250703 기록

in avle-pool •  18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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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이 선택한 길인지 이 나무가 선택한 길인지 모르겠다. 천연의 은행나무가 앞으로 지구 상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도시의 가로수로서 인간들이 심어 놓으니까 멸종 될 일은 없다. 은행 나무가 더 똑똑한 거겠지. 엄마 나무 밑에서 떨어진 은행이 어떻게든 엄마 뿌리를 기반 삼아 올라왔겠지만 엄마가 아니라 계모 보다 못한 무관심 속에서 최후에 죽어버릴 것이다. 인류가 사라진다면 은행 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라날 수 있겠지.

2
오늘 내키지 않는 살생을 했다.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바람에 거실로 나가 보니 엄청 살찌고 큰 바퀴 벌레가 얼음처럼 가만히 있다. 지도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파리채를 주며 얼른 잡으라고 하신다. 잠깐 망설였다. 몇 년 전 같은 상황이 있었다. 살살 내려쳐서 내보내려다 그놈이 후다닥 도망가 버리니 아버지께서 엄청 화를 내셨다. 이번에는 두고 보겠다는 눈으로 계속 나를 주시하셨다. 다행 하게도 정확하게 살살 내려쳤다. 정신을 잃고 뒤집혀져 발버둥을 치는데 에라 모르겠다 확인으로 한번 더 살살 내려쳤다. 그냥 휴지로 집어서 바깥에 내다 버리면 될 것을 화장실 변기에 버려 물을 내렸으니 살살 내려칠 필요 없이 완전 살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 핑계를 댔지만 솔직히 나 편하자고 이미 죽일 마음이었다. 살생을 하려거든 가려서 하라는 살생유택(殺生有擇)의 계율로 이 업보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겠지. 폭력 없이 사는 삶은 불가능, 생명으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불편함을 아주 많이 감수해야 하지만 그럴 인내가 한참 모자라다. 모기도 벌써 몇 마리 죽였다. 분노와 혐오심을 가득 실어서.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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